• 2019.11.23

똑같은 것을 대해도 어떤 사람은 거기서 많은 것을 깨닫고 얻어내지만, 어떤 사람은 한, 두 가지 밖에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를 능력 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풍요롭게 해 줄 대상을 찾지 말고, 나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이 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능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자 풍요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 니체 , <즐거운 학문> 중

 

Water falls

Water falls from bright air.
It falls like hair, falling across a young girl’s shoulders.
Water falls making pools in the asphalt, dirty mirrors with clouds and buildings inside.
It falls on the roof of my house.
It falls on my mother and on my hair.
Most people call it rain.
- 영화 <패터슨> 중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물이 떨어질 때의 하늘색은 어떤 색일까. 물이 떨어지는 템포, 땅바닥에 부딪혀서 튀는 모양, 땅에 도달하고나서의 흐름. 집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우산을 함께 쓰고 있을 수도 있다. 비 내리는 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폭포(Waterfalls)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라는 단어 하나로 이 심상들을 담아내기에는 무리다.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원문의 아우라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할 시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 정적분의 정의를 처음 이해하고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수식 한 줄뿐이지만 거기에 담긴 개념들과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어울리고 있는지. 꼬불꼬불한 면적을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니. 미분과 적분이 서로 연결 된다니.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수학이 전부 그 수식 한 줄을 위해 달려온 느낌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고 짜증을 유발할 때도 많지만 이 기호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접하노라면 새삼 다시 감탄하곤 한다.

대학 다닐 때 수강한 '인문과 예술의 세계' 에서는 유토피아를 문학, 역사, 예술의 관점에서 다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예술이다. 영국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는 러시아 혁명이 지나고 나면 유토피아가 올 것을 확신했다. 유토피아의 실현을 가정했을 때 우리의 삶과 노동이 어떻게 되겠는가가 이 사람의 주제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이 일을 그만둘까? 절대 아닐테다. 분명히 일을 정말 사랑하고 끊임없이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돈 걱정이 없어진 세상이 온다면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두는 사람도 많을테다. “예술의 창조와 그것에 따르는 일의 즐거움은 회화나 조각 등의 예술작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의 일부이고,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윌리엄 모리스의 어록에서 이 차이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예술이나 시가 별거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시선을 발견 하고 어떤 형태로든 풀어낸다면 전부 예술이라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이전 룸메이트 중 한 명은 아티스틱했다. 옷걸이를 반으로 접고 구부려 모자를 걸고 택배 박스에 종이를 붙여 신발장을 만들었다.(윌리엄 모리스는 생활공예를 강조했다.) 청소도, 수학도, 요리도, 딥러닝도 전부 예술이다.

마침 Coldplay의 새 앨범 제목이 "Everyday Life"이고 아이유의 새 앨범 제목은 'Love Poem'이다. 그녀는 곡 설명에 이렇게 썼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내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참견을 잘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배려나 위로가 아닌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염치 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한다.
이 시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
누군가의 인생을 평생 업고 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방향이 맞으면 얼마든 함께 걸을 수는 있다.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게 받았던 많은 시들처럼 나도 진심 어린 시들을 부지런히 쓸 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시를 들어 주면서,
크고 작은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시를 쓰고 싶고 당신의 시도 듣고 싶다. We want bread, but roses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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