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시(散文詩) 1   /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아이덱거 럿셀 헤밍웨이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가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한 연구 기관의 딥러닝 입문자 강의에 이틀간 실습 조교로 참여했다. 주로 이미지 데이터를 Segmentation task에 맞게 전처리 하고 모델을 학습하는 내용이었다. 여느 수업이 그렇듯 잘 따라가는 분들도 있지만 더딘 분들도 있었다. 그 중 세 분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인상이 있다.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 하시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질문하시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식으로 유도했을 때 코드 실행을 두려워하셨다. 소속 기관에서 임금을 지불했으니 맘껏 질문하실 권리가 있다, 시행착오를 겪는게 당연하고 해보고 안되면 코드를 고치면 되니 해보시라 해도 잘 안 변했다. 약간의 친밀감이 생기고 나서야 ‘부끄러워서’, ‘바보 같아 보여서’ 그렇다고 하셨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한동안 일 때문에 한글 문서 편집을 많이 해야했다. 도움을 청할 때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개입을 줄였다. ‘이렇게 하면 돼?’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일단 해보시라고, 해보고 아니면 취소하면 된다고, 자료 다 날라가는 거 아니다’라는 대답을 많이 했다. 연구원 분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속상했다.

‘눈치를 보는가?’로 권력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거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스스로가 위축되어 저자세를 자처하기도 한다. 엄마는 내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거나 답답해 하는 것 같으면 다음에 해도 괜찮을 거라고 하곤 했다. 이런 관계는 조건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거로 보인다. 지식, 외모, 젊음, 신체 조건, 직급, 재력, 젠더, 지역, 인종 등등. 고백컨대 한 때는 성적이 낮은 친구를 놀리거나 무시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씩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있다.

좀 더 나은 조건 때문에 상대를 위축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건 중 다수는 우연히 얻은 게 많고(부모님 세대와는 다르게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가깝게 둔 세대이다. 마침 20대 때 인공지능 붐이 일어나면서 시간과 체력이 많을 때 익힐 수 있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돈 걱정 없이 학업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있으며(엄마의 가정학 지식에 항상 도움을 받는다. 가을, 겨울 옷이 어쩜 그렇게 새 옷처럼 보관되어 있는지!), 무엇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눈치 보지도, 눈치 주지도 않으면서 살고 싶다.

p.s.)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티신 분은 결국 건물과 자동차와 배경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코드가 잘 보이지 않아 글자를 최대한 키워놓고 거북목으로 화면을 보던 50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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