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시집《그대, 거침없는 사랑》(푸른 숲) 中


따로 지정해둔 벨소리가 울린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설레면서 전화를 받는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달이 떴다고 좀 보라고 한다. 매일 뜨는 달이 뭐 대수인가 싶으면서도 네가 신나 하니 나도 신이 난다. 한 달 전 이맘때가 추석이니 지금쯤 보름일 테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생각해보니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하다니. 눈을 감고 근사한 밤하늘을 떠올려 본다. 정말이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밤인데도 밝고 청명해서 사물들이 또렷이 보이고 강 흐르는 소리마저 들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해준 네가 사무치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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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라 - 보들레르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새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

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몇시인지.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그대 좋을 대로."


_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불문학자 황현산 번역, 문학동네 (2015)
프랑스어 원문


시인은 단호하다인생의 모든 유일한 문제를 취했는지로 일축한다시간의 무게가 우리를 누르기 때문이다
오늘아침잠은 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었다하루를 어떻게든 채워야하는데 기대가 안 됐다
인생노잼 시기가 이런거구나 싶었다새로운 목표를 잡았을 모든게 흥미로웠는데 익숙해지니까 무뎌졌다
모든게 재미 없어지면 '살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수십 번 질문해도 답이 없었기에 이젠 이렇게 대응한다
취하자그러나 무엇에뭐든 떠올렸다
기술로 이뤄낼 있는 , 좋은 회사, 김동률 콘서트, 주말 약속부모님 걱정 덜기, 보고싶은 영화가고싶은 여행먹어본 맛집 등등
취기가 가시고 다시금 권태가 스멀스멀 올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면 또 다시 몰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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