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마시면 일차로 대뇌가 해방되지. 밥맛이 생기는 단계를 서서히 지나면 과묵한 사람은 말이 많아지고 소심한 사람은 큰소리를 치고 파멸에 이른 사람은 절망을 잊어.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네. 더 마시면 소뇌가 해방되네. 비틀거리고 혀가 꼬이지. 제가 흔들거리면서 똑바로 서 있는 남들보고 아쭈 요게 피하네. 하는 사람들 봤겠지. 그다음에도 더 마시면 중뇌의 해방을 맞게 돼. 체온이 떨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만하네. 그 다음에는 연수의 해방. 해방은 좋은데 부작용으로 호흡의 곤란이 생기는가 봐. 알코올 혈중농도 0.5 퍼센트 이상이 되면 절반은 죽는데. 그러면 영원한 해방을 맞겠지. ...

<해방- 술 마시는 인간>, 성석제 


음주를 좋아한다. 대뇌를 해방하는 경험이 좋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처럼 취했을 때가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눈치 보느라 억압된, 무의식에 잠긴 속마음을 만나기도 한다. 실언을 하거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나름 도움이 된다. 용기가 없어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말을 하기도 한다. 혼술을 할 때면 혼잣말을 하고는 실실 웃는다. 킥킥거리다가 다음날 이불킥.(죄송...) 이런 이유로 인용문이 인상 깊었다. 압박해오는 것들로부터의 해방. 의식과 자기 검열로부터의 해방. 글이 안 써지거나 문제가 안 풀리면 술을 찾을 때도 있다. 20대 초반엔 중뇌까지 해방하곤 했는데 요즘엔 건강을 생각해 대뇌에서 그만하려고 노력한다. 같이 대뇌를 해방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 주시라.


Vincent van Gogh, chemistry and absin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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